Search by:
   

 Elliott Smith An Introduction To...

 

 

 

 수록곡

 

01 Ballad of Big Nothing - from Either/Or

02. Waltz #2 - from XO

03. Pictures of Me - from Either/Or

04. The Biggest Lie - from Elliott Smith

05. Alameda - from Either/Or

06. Between The Bars - from Either/Or

07. Needle In The Hay - from Elliott Smith

08. Last Call - from Roman Candle

09. Angles - from Either/Or

10. Twilight - from From a Basement on the Hill

11. Pretty (Ugly Before) - from From a Basement on the Hill

12. Angel In the Snow - from New Moon

13. Miss Misery (early version) - from New Moon

14. Happiness (single version) - from Figure 8

 

 

 소개

 

 

█ 소개

◈ 7년 전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간 우리 시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 Elliott Smith 최초의 베스트앨범 발매!

◈ 그의 일곱 앨범들 Roman Candle, Elliott Smith, Either/Or, XO, Figure 8, From A Basement on the Hill 그리고 New Moon 에서 선별 된 Waltz #2, Between the Bars, Miss Misery 등 그를 대표하는 14곡의 베스트 초이스!

◈ 영화 굿윌헌팅 OST에 수록되었던 Miss Misery 의 얼리버전 Early Version, Happiness 의 싱글버전 등 희귀 트랙 특별 수록!

“나는 Elliott Smith 를 생각할 때면 그가 만든 아름다운 곡들, 깨끗한 멜로디,

그의 사랑스러운 속삭임을 떠올립니다”

10/10 Drowned In Sound

 

█ 앨범해설

세대를 초월하는 청취자들을 매료시킨

지금은 곁에 없는 우리시대의 싱어 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첫번째 베스트 레코드

[An Introduction to... Elliott Smith]

 

불현듯 우리 곁을 무심하게 떠났던 90년대 모던 소년 소녀들의 영원한 상징이 바로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다. 이는 너무 뻔한 시작 문구인데 인터넷으로 인해 취향이 세분화/분산된 이후 우리시대, 그러니까 90년대 말/ 2천년대를 대표하고 상징할만한 소위 '아이콘'이라는 형태는 부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개인화/세분화된 사회에서 얻어낸 '한 세대를 대표하는 싱어 송라이터'라는 칭호는 실로 각별한 것이다. 물론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은 이런 의미 이상으로 더욱 특별했다.

 

각설하고 본 컬렉션은 엘리엇 스미스의 통산 첫번째 베스트 모음집이다. [New Moon]에 이어 이번 베스트에도 다시 한번 래리 크레인(Larry Crane)의 노트가 실렸다. 그는 엘리엇 스미스의 엔지니어겸 자료보관자이기도 한데, 앨범의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 그의 글은 엘리엇 스미스의 바이오그라피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수록된 음원들은 대부분 오리지날 릴리즈의 믹스를 따르고 있으며, [Last Call]의 경우 2010년도에 다시 손본 믹스버전을, 그리고 [Happiness]는 10초 정도가 에디트된 7인치 싱글 발매 버전을 담고있기도 하다. [Last Call]의 경우 래리 크레인이 최근 새롭게 믹스해 킬 록 스타즈(Kill Rock Stars)에서 재발매된 [Roman Candle]의 버전을 담은 것이다. 아무튼 래리 크레인의 부클릿에 실린 글도 그렇지만 이 앨범은 그를 '기억'하기 위한 앨범이라기 보다는 '소개'를 목적으로 한 레코드이기에 마찬가지로 연대기를 나열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Steven Paul "Elliott" Smith, 8/6/1969~10/21/2003

1969년 8월 6일, 네브라스카 오마하에서 의학도였던 아버지와 초등학교 음악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년 후 부모의 이혼으로 모친과 함께 텍사스로 이주했는데, 계부와의 관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계부의 이름은 찰리였고, 그의 노래 [Some Song]에는 이런 가사가 담겨있기도 했다. "찰리는 매주 너를 때리지/ 그리고 너는 자라서 이상한 놈이 되어있을 거야" 사실 ‘찰리’라는 이름은 그의 다른 곡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9살에 피아노를, 그리고 열살 무렵에는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면서 연주를 시작한다. 어린시절 [Fantasy]라는 피아노 곡을 작곡했고, 이는 아트 페스티발에서 상을 받았다. 14세 무렵 친아버지가 있는 포틀랜드로 옮긴 이후 4트랙 레코더로 레코딩을 시작한다. 친구들과 함께 술과 약에 손대기 시작하며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스트레인저 댄 픽션(Stranger Than Fiction), 머더 오브 크로우즈(A Murder of Crows), 그리고 그린하우스(The Greenhouse)와 같은 밴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스스로를 "엘리엇"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미 머더 오브 크로우즈에 있었을 당시에 '엘리엇 스틸워터-로터(Elliott Stillwater-Rotter)'라는 가명을 사용했었다. 본명인 스티븐은 너무 공부벌레 같은 이미지였다고.

 

햄프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엘리엇 스미스는 학교 친구인 닐 거스트(Neil Gust)와 함께 전설의 히트마이저(Heatmiser)를 결성한다. 후에는 현재 쿠아시(Quasi)의 멤버 샘 쿰스(Sam Coomes)가 베이스로 들어오기도 하는데, 밴드는 포틀랜드에서 1992년도부터 활동을 개시하고 [Dead Air]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이후 EP와 한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한 이후, 무려 메이저인 버진(Virgin)과 싸인하면서 1996년도에 [Mic City Sons]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무렵 엘리엇 스미스는 솔로와 히트마이저 활동을 병행했는데, 솔로 활동이 서서히 주목 받으면서 밴드는 해산한다. 엘리엇 스미스는 당시를 회상하기를 자신이 쓴 곡이 락의 테마송같이 되어버리는 것이 지긋지긋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드를 그만두지 않았던 것은 친구였던 닐 거스트 때문이었다고 했다.

 

1994년도에 발표한 그의 최초 솔로 앨범인 [Roman Candle]은 당시 여자친구의 권유로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이루어진 4트랙 테잎을 캐비티 서치(Cavity Search) 레코즈에 보낸것이 계기가 됐다. 레이블의 오우너는 곧바로 정규앨범으로 릴리즈 계획을 잡았는데, 미니 앨범 정도의 계약을 예상했던 엘리엇 스미스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당시 북서부 지방에는 머드허니(Mudhoney)나 너바나(Nirvana)같은 밴드들의 전성기였고, 이런 어쿠스틱 사운드는 공연장에서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솔로 데뷔 라이브는 1994년 9월 17일 엄브라 페눔브라(Umbra Penumbra)에서 진행됐다. 그 후 메리 루 로드(Mary Lou Lord)의 오프닝을 의뢰받고 짧은기간 동안 투어를 함께했다. 이후 그는 메리 루 로드에게 [I Figured You Out]이라는 곡을 주기도 한다.

 

1995년도부터 킬 록 스타즈와 함께하면서 커리어의 정점에 돌입한다. 셀프 타이틀 [Elliott Smith]는 사실 제목이 없는 앨범이라고 표현했다. 대부분은 혼자서 레코딩을 진행시켰는데, 옛 친구인 닐 거스트가 [Single File]에 참여하기도 했다. 앨범은 전작을 답습하면서도 한층 더 발전시킨 내용물을 담아냈다. 약과 알코올 중독을 연상시키는 곡들이 많았지만 엘리엇 스미스는 그것들이 표면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 앨범 때문에 자신이 정말로 어둡고 침울한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며, 후에는 일부러 의식해서 다른 분위기의 곡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1997년, 세 번째 정규앨범 [Either/Or]가 현상을 만들어낸다. 베이스와 드럼, 키보드, 그리고 일렉트릭 기타를 비롯한 전작보다는 비교적 다양한 악기들로 채워놓았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의 1843년도 저서 [양자택일]에서 앨범의 제목을 빌려왔다. 따뜻한 곡들의 비중이 늘었으며 한 곡도 빠지지 않는 출중한 트랙들로 인해 모던포크와 인디팝, 그리고 시대를 대변하는 앨범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기부터 이미 중증의 음주습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기다가 약물의 복용까지 점차 늘려나간다. 포틀랜드에서 브룩클린으로 이주한다.

 

1996년도에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감독에게 영화음악을 의뢰받아 [굿윌헌팅(Good Will Hunting)]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시작했한다. 신곡 [Miss Misery]를 필두로 오케스트라 버전의 [Between The Bars],  그리고 [No Name #3], [Angeles], [Say Yes] 등의 곡들을 제공했다. [Angeles]의 경우, 이후 구스 반 산트의 또 다른 영화인 [파라노이드 파크(Paranoid Park)]에도 삽입됐다. 1997년도에 공개된 영화는 알려진 대로 성공했고, 그의 이름 역시 꾸준히 언급된다. 게다가 무려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제곡상 후보에까지 노미네이트 되는 웃지 못할 기적을 만들어 낸다. 이는 놀랍고 재밌는 성공사례로 항상 회자되고 있다.

 

시상식에 출연했을 당시의 흥미로운 일화들이 전해졌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흰색 정장을 시상식장에 그대로 입고 갔지만 너무 허름해보인다며 주최측은 비슷한 디자인의 프라다(Prada) 수트를 긴급 공수해 입혔다는 얘기도 있었다. 결국 그 해 주제곡상은 셀린 디온(Celine Dion)이 부른 영화 [타이타닉(Titanic)]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에게 돌아갔다. 그는 상을 기대하고 갔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초현실적인 경험이었고 즐거웠다고 밝혔다. 2분 이하의 공연이었으며, 게다가 거기에 있는 관객들은 자신의 연주를 들으러 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셀레브리티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하루정도 달 위를 걸어 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결국 앨범과 싱글의 성공으로 1998년도 당시 새롭게 급부상하는 메이저 레이블 드림웍스(DreamWorks)로 이적한다. 하지만 그 무렵 엘리엇 스미스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을 무렵, 그는 느닷없이 벼랑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나무에 걸리면서 그의 자살은 실패했는데,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에 대한 질문을 하자, 뛰어내린 것은 사실이나, 그 얘기는 그만 두자며 언급을 회피했다. [Roman Candle]을 릴리즈했던 캐비티 설치 레코드의 크리스토퍼 쿠퍼(Christopher Cooper)는 포틀랜드에 있을 무렵 여러번 삶의 의지를 주입하면서 그의 자살을 단념 시켰다고도 밝혔다.

 

드림웍스에서의 첫 앨범인 [XO]가 공개된다. 어쿠스틱에 뿌리를 두고 혼섹션과 현악기, 그리고 보컬의 오버더빙을 비롯한 다양한 어레인지에 도전했다. 개인적으로는 메이저 당시에 발매한 두 장을 가장 좋아하는데, 엘리엇 스미스가 인디에 있었을 때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스튜디오 실험을 자유자재로 펼쳐보이고 있는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Waltz #2]는 당시 한국의 드라마에도 삽입됐으며, [I Didn't Understand]의 경우 힙합 아티스트 RJD2의 [Ghostwriter]에 샘플링되기도 했다. 아카데미와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결과적으로 본 작이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성공적인 세일즈를 기록한 앨범이 됐다. 발매이후 투어를 가졌으며 예전 히트마이저에서 동거동락했던 샘 쿰스의 쿠아시와 함께 다녔다. 엘리엇 스미스는 이후 쿠아시의 [Field Studies]에서 베이스를 쳐주기도 하면서 우애를 돈독히 한다.

 

2000년도에 [Figure 8]을 발표한다. [XO] 당시의 프로덕션 팀들이 집결했고 일부는 런던의 애비 로드(Abbey Road) 스튜디오에서 레코딩되기도 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밴드 사운드가 전면에 부각됐으며, 주 멜로디인 뿐만 아니라 코러스워크나 부선율로써의 앙상블, 그리고 오케스트라적 요소들은 비틀즈(The Beatles)나 드뷔시(Debussy)의 작품들을 의식한 부분이었다고 언급했다. 벡(Beck)이나 펄 잼(Pearl Jam)과 같은 동료 뮤지션들, 그리고 평론가들에게 극찬됐다. 여러 공중파 토크쇼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고 백밴드를 대등하고 성황리에 투어를 마쳤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치밀한 오버더빙에 의해 완성된 레코드를 라이브에서 재현하는 것이 곤란해지고, 밴드의 큰 음량이 자신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게다가 판매고에 있어서도 메이저 회사 수준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결국 다시 헤로인에 손을 댄다.

 

이후 그의 편집증적인 질환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후 같은 프로덕션팀과의 세션이 중단됐고 매니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전 앨범에 수록된 [Happiness]에서 백업 보컬을 도와줬던 친구 존 브리온(Jon Brion)과 둘이서 레코딩을 시작했다. 그들은 상당한 분량을 녹음했지만 엘리엇 스미스의 약과 술 문제에 관한 충돌로 인해 우정에 금이가고 레코딩은 모두 파기시켜 버린다. 그 후 2001년 5월부터 거의 혼자서 새 앨범 작업에 돌입한다. 이 세션에는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의 드러머 스티븐 드로쯔(Steven Drozd), 그리고 샘 쿰즈가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레코딩을 했던 이의 말에 의하면 엘리엇 스미스는 천5백 달러어치의 헤로인과 약들을 하루만에 소비했고 자주 자살욕구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2001년도에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로얄 테넨바움(The Royal Tenenbaums)]의 자살기도 씬에 그의 곡 [Needle In The Hay]가 사용됐다. 원래는 비틀즈의 [Hey Jude]를 커버할 예정이었지만 그가 기간을 어기면서 결국 오케스트라가 대신하게 됐다. 웨스 앤더슨은 당시 그는 무척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 녹음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당시 엘리엇 스미스는 라이브 활동조차 하지 않았다. 2001년 말에 진행된 쇼에서는 관리가 안된 몰골로 등장해 연주도중 자주 기억장애를 일으켰으며 손가락의 움직임과 노래, 그리고 가사전달도 불안했다고 한다. 2002년도에 치뤄진 세 번의 라이브 중 윌코(Wilco)와 더블 헤드라이너로 진행된 퍼포먼스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금까지의 최악의 쇼", "견딜수 없는 악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 웹진 글로리어스 노이즈(Glorious Noise)에서는 엘리엇 스미스가 1년 이내에 죽어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게다가 2002년도에는 플레이밍 립스와 백의 라이브 공연장에서 난투극을 벌이며 유치장에 끌려가기도 한다.

 

결국 2002년 말부터 재활센터에서 링겔 치료를 받으며 중독을 극복하게 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의존했던 약과 술을 끊으면서 정확히 34세의 생일때는 멀쩡한 상태를 유지했다. 당시 사운드트랙 작업으로 그를 지켜봐왔던 영화감독 스티븐 한프트(Steve Hanft)는 그의 생전 마지막 6개월을 가리켜 '터널의 끝자락에 존재하는 밝은 빛'과도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와중, 너무나 갑자기 2003년 10월 21일에 LA의 자택에서 가슴에 두개의 상처를 입은 채 사망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당시 동거하던 제니퍼 치바(Jennifer Chiba)는 당일 그와 말다툼을 했다. 그녀는 문을 잠그고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와중 비명소리를 들었고 뛰쳐나가보니 부엌칼이 가슴에 박힌 상태의 엘리엇 스미스가 서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칼을 뽑아내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결국 1시 36분에 사망했다. 처음에는 자살로 알려졌지만 공개된 검시보고서에는 살인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있었다. 당시 포스트 잇에 적혀있던 메모의 내용은 이랬다. "I'm so sorry-love, Elliott. God forgive me." 생전 마지막 발표한 앨범의 마지막 곡 제목은 [Bye]였다. 너무 끔찍한 우연 아닌가?

 

그가 사망한 이후 LA 교외에 있는 [Figure 8]의 커버 배경이기도 한 오디오 수리점 솔루션즈 오디오의 벽면 앞에는 많은 팬들이 방문해 꽃다발과 초를 바쳤고 벽에 메세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시체는 화장됐고 그가 묻혀있는 곳은 발표되지 않았다. 엘리엇 스미스 다운 방식이었다. 결국 LA의 솔루션즈 오디오가 그의 '기념비'가 된 것이다. 셀 수도 없는 아티스트들 또한 추모 앨범과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From a Basement on The Hill]은 뜻하지 않게 유작의 형태로 발매됐다. 유족의 희망에 의해 마무리와 믹스는 항상 함께 해왔던 롭 슈나프(Rob Schnapf), 그리고 엘리엇 스미스의 전 여자친구이자 현재는 크립스(The Cribs)의 개리 자만(Gary Jarman)의 와이프인 조안나 볼름(Joanna Bolme)에 의해 진행했다. 엘리엇 스미스 자신은 2장으로 릴리즈하려 했지만 15곡의 1장짜리로 발매됐다.

 

2007년 5월 8일에는 킬 록 스타즈에서 2장짜리 미발표 음원 모음집인 [New Moon]이 공개됐다. 1994년부터 1997년에 걸쳐 녹음된 소스들로 미발표곡, 데모, 그리고 싱글 비사이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번 베스트에 실린 [Miss Misery]의 초기 버전은 이미 [New Moon]에서 들을 수 있는 트랙이었다. 베스트에 수록된 [Angel in the Snow]는 영화 [인 디 에어(Up in the Air)]에 삽입되기도 했다. [New Moon]으로 인해 얻은 수익은 대부분이 포틀랜드의 자선단체에 기부됐다고 한다. 재산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좀 더 덧붙이면, 죽기직전 함께 있었던 제니퍼 치바가 엘리엇 스미스의 가족들로부터 그의 재산의 15%를 요구하는 소송을 걸기도 했다. 현재 그의 음원에 관한 권리는 엘리엇 스미스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상태다.

 

Ballad of Mr. Misery

그의 새로운 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기다려왔던 베스트 컬렉션이다. 미국에서는 킬 록 스타즈에서 11월 2일에, 영국에서는 도미노(Domino)에서 11월 1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들고있는 한국 버전은 11월 16일에 각 발매될 예정이다. 다만 [Say Yes]가 들어있지 않은게 약간 의아하다. 모 이런 앨범에서 뻔하게 붙는 레파토리겠지만 그의 대표작을 듣고 지금 막 관심을 가진 초심자들, 새로운 믹스버전을 담은 곡을 들어보고 싶은 올드 팬들 모두를 위한 한 장이 되겠다. 누구에겐 매년 맞이하는 추모 그 이상의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2007년도 11월자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에서는 역사상 가장 과소평과된 기타리스트 25인 중 23위로 그의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그의 몇몇 곡들이 가진 코드는 상당히 잡기 어려운 프레이즈로 이루어져있어 연주하기 힘들기도 하다. 엘리엇 스미스는 피아노, 베이스, 드럼, 클라리넷 등을 연주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로, 특히 피아노의 경우 고난이도의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의 악보 또한 연주해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기타는 어쿠스틱의 경우, 야마하(Yamaha)의 FG-180과 깁슨(Gibson)의 J-45, 그리고 일렉트릭으로는 1969년산 깁슨 ES-330 두 대를 사용했다. 그의 소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참고하시길.

 

순수하고 깊은 울림이 지적이고 고독한 가사와 맞물리면서 많은 이들을 공감하게끔 만들었다. 불행한 인생 속에서 아픈 곡을 쓰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피하고 싶었던 현실적 고통과 고뇌에 대한 치부를 들춰냈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성질의 것이 아닌, 미묘한 공감대로써 작용했다. 섬세하고 위험했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달콤한 독 같았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보태보면 입대 후, 100일 휴가를 나와있을 무렵에 거짓말같이 엘리엇 스미스가 자살했다. 안그래도 꿀꿀했던 100일 휴가의 기분은 멍해져 버렸다. 그 짧은 휴가기간 내에 최신 음악들을 듣고 돌아가겠다는 계획과는 달리 엘리엇 스미스를 주로 들었던 것 같다.

 

닉 드레이크(Nick Drake)가 앞 세대에게 한 것을 엘리엇 스미스가 해주고 있다. 외로움과 칠흙의 어둠을 이미지화 시킨 부분 또한 그렇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가 알아 두어야 할 감정이다. 아름다운 마음의 절규를 담아냈다. 이는 세대를 아우르는 고독의 문서다. 실제로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아름답게 스며드는 사운드로써, 반대로 부정적이고 암울한 사고들을 부추기는 류의 것으로써 작용할 여지도 있다.

 

계속 언급하지만 본 컬렉션은 두고두고 추모하는 이들보다는 다음세대에게 보내는 모음집에 가깝다. 발매 직전 킬 록 스타즈에서 뿌린 보도자료에는 우리시대의 송 라이터의 음악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들려주기 위함이라는 취지를 담았다고 적혀있다. 이 여린 송라이터와 함께 젊은 날을 보낸 세대들에게 있어서 이 컴파일은 자신들의 젊은 날이 점점 화석화되어 후대에게 전이되는 기이한 풍경을 목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모든 이전세대가 경험한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오직 34세에 성장을 멈춘 엘리엇 스미스만이 세대가 바뀌어도 같은자리에 있어줄 것이다. 죽은 지 3, 40년이 지난 닉 드레이크, 그리고 쥬디 씰(Judee Sill)의 음악이 여전히 우리세대에게 위안을 주듯, 앞으로 3, 40년 후에 태어날 후손들 역시 똑같은 경로로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에서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불편하고 가슴아픈 위안을.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건

사실 쉬운 일이고

나도 그러려고 노력중이다.”

- [Miss Misery] 中.

 

한상철 (불싸조 http://twitter.com/bul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