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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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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3기를 이기고 재즈 연주자로 데뷔한
60대 재즈클럽 지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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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재즈 트럼페터의 아름다운 기록’
JP Lim & Friends [Remember JP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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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신앙으로 시련의 다리를 건너온 황혼의
트럼펫터, 그의 도전에 최고의 재즈인들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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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스산해진 마음에 따듯한 온기를 불어넣는
주옥같은 재즈 스탠더드 넘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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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떠난 여행, 무던한 열정과 따듯한 동료애가
함께 한 소중한 시간
전문
재즈 뮤지션이 아닌, 재즈클럽의 관리자이자
아마추어 재즈 트럼펫터가 60을 훌쩍 넘긴
나이로 늦깎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서울
압구정동 소재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의
임재필 전무가 바로 그 주인공.
뒤늦게
재즈의 매력에 빠져들어 독학으로 공부해온
시간이 12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재즈의 중심세계로 걸어온 짧지않은
세월.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시련, 대장암 3기 판정.
감당키 어려운 시련, 오직 주님께 의지해야
하는 시간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혼자서는
일어서기조차 힘든 몸 상태로 '성모의 밤'
’순교자의 밤‘ 등 성당행사에 나가 트럼펫을
불었고 성당의 간판을 손으로 조각하며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정성의 기회를 바쳤다.
“연주라기보다는
기도였고 간판을 완성할 때까지는 살려 두시지
않을까”생각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고통의
시간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3년여에
걸친 항암치료를 이겨내고 거짓말처럼 돌아온
스테파노 임재필.
그에게는
언제나 함께하던 ‘일요일밤의 라이브 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고의
재즈 연주자들인 유영수(드럼), 신동진(색소폰),
양준호(피아노), 오정택(베이스)이 기꺼이
반주자로 나서고 한국재즈계의 대부 이판근
선생은 ‘Remember JP Lim'을 작곡하여 선사했으며,
재즈 평론가 남무성은 앨범 프로듀서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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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이
임재필
- 트럼펫, 푸르겔 혼
신동진-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유영수
- 드럼, 콩가
양준호
- 피아노
오정택
- 베이스
이판근
–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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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마음을
치유하는 주옥같은 스탠더드 넘버들, 그 너머로
외면할 수 없는 삶의 드라마가 있다“
낯선
연주자! “저 모자 쓴 트럼펫터는 누구지?”
[울진
재즈페스티벌]을 TV로 시청하던 재즈이론가
이판근 선생이 물었다. 마침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합동 잼세션(Jam Session) 장면,
출연자 전원이 무대에 올라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의 유명한 하드 밥 넘버 ‘St. Thomas’를
연주하고 있었다. 수십 명의 틈바구니 속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트럼펫을 연주하던 남자.
웬만한 얼굴은 모두 알아보겠는데 아무리 봐도
낯선 얼굴이었던 것이다. 훗날 이판근 선생은
이 연주자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딘지 설익은 냄새가 풍겼지만
한음한음 자신의 소리를 내려는 진중한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는 설명이다. 국내 재즈계에서
트럼펫터가 드물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이판근 선생의 눈에 띄었던 남자는 공교롭게도
전문 재즈 뮤지션이 아닌,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의 총 관리자 임재필 전무였다.
[원스 인 어 블루문]은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라이브 클럽으로, 영업장을 돌보는 시간외에
틈틈이 재즈 트럼펫을 공부 중이었던 그에게
용케 무대에 설 기회가 왔던 것. 그게 2000년
여름의 일이었으니 벌써 11년 전의 이야기다.
2007년
봄, 나는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의 앨범 [달의
착시](Moon Illusion)를 제작했고 그 쇼 케이스를
위해 [원스 인 어 블루문]을 찾았다. 블루문은
가끔 재즈 뮤지션들의 앨범 발표회를 겸한
기자 간담회가 마련되는 장소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반갑게 악수를 청하던 임재필 전무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중에 내 앨범도
좀 만들어줘...” 평소 겸손하고 소탈한 성품의
그가 특유의 너스레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래야죠!”라고 망설임 없이 응수했다.
어디까지나 서로가 농담처럼 주고받던 대화였다.
그가 영업시간에 종종 뮤지션들과 어울려 한
두 곡쯤을 연주한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깎이 재즈공부를 시작한
처지에서 과연 작품발표까지 이를 수 있을까?
그 열정에 대해서만큼은 내심 파이팅을 보내고는
있었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그만한 속도를
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시 그의 연주를 클럽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꺼내든 트럼펫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일년에 한두 번 꼴로 블루문을
찾아갔고 그때마다 일부러 일요일 저녁시간을
택했다. 일요일은 베테랑 재즈 뮤지션인 신동진(색소폰),
유영수(드럼) 선생의 캄보밴드를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했지만 임재필 전무가 중간에 몇
곡을 함께 연주하는 날이기도 했다. 왜 그랬던지
가끔씩 그의 트럼펫 연주가 궁금해졌다. 남들이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슬쩍
슬쩍 그 가능성을 엿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훔쳐보는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항상 무대가 내려다보이는 2층 난간 옆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
보통 Four Stage를 치루는 라이브 프로그램
중 2부 스테이지의 중간쯤에서 임재필 전무가
밴드에 합류하는 형식이었다. 클라리넷과 플루트,
색소폰을 다루는 신동진 선생을 원 혼(One
Horn)으로 하여 피아노에 양준호, 베이스에
오정택, 드럼에 유영수 선생이 포진한 퀄텟(4중주)에서
트럼펫(임재필)이 더해지면 2관 편성의 퀸텟을
이루게 된다. 얼핏 실력 있는 밴드가 아마추어
트럼페터를 위해 배려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언제부턴가 이 퀸텟은 자연스럽고
유연한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었다. 연주도
연주겠지만 오랫동안 맺어진 인간적인 유대감
때문인지 그들의 무대에는 항상 특별한 온도가
감지되는 것 같았다. 물론 임재필 전무의 연주가
일취월장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는 약속이나 한 듯 그때마다 발전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단조로웠던 프레이징과 호흡은
변화로워졌고 아쉬웠던 솔로는 넉넉한 길이를
확보해 가고 있었다. 단순히 연습의 량만으로
그런 소리의 질감과 프레이즈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내가 임재필 전무가 아닌 한 음악인의 열정에
대해서 깨닫게 되기까지는 다소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젊은 시절
그는 캬바레 등지에서 직업적으로 건반과 트럼펫을
연주했다고 한다. 밴드 마스터까지 지냈다고
하니 순수 아마추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트럼펫을 처음 불었던 것도 시골 논산중학교
때부터였다. 다만 음악 그 자체에서 비전을
찾지 못한 채 생계형으로 밤무대를 전전해야했고,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되고 난 뒤부터는
돈을 더 벌기위해 언제든 악기를 놓을 생각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순수음악에
대한 미련을 묻어둔 채 안타까운 세월만 흘러버린
것이다. 그랬던 그가 뒤늦게나마 악기연주에
다시 매달리게 된 계기가 바로 [원스 인 어
블루문]이었다. 매일 밤 클럽 무대에 오르는
뮤지션들을 지켜보면서 점차 재즈에 매료되었고
“더 늦기 전에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해묵은
트럼펫을 꺼내들게 되었다. 자신에게 음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그는
억척스럽게 연습에 매달렸고 클럽 무대에서
간간히 연주자들과 어울리는 것 외에도 [이정식
재즈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들어가 트럼펫을
불었다. 앙상블을 체계적으로 익히며 톤을
가다듬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뮤지션들 틈에 섞여서
묵묵히 재즈의 중심세계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적의
시간
그러나
기회의 시간은 오래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임재필 전무에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찾아온
것은 2008년으로 들어선 겨울의 끄트머리 즈음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때 그는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바른 몸가짐에 신경 쓰던 그로서는
청천 벽력같은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2008년은 [원스 인 어 블루문]이 개관 10주년을
맞는 해였다. 오픈 리셉션을 가졌던 1998년
4월, IMF 경제위기 속에서 어렵게 출발하여
10년이라는 귀한 날을 맡았으니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이었다. 클럽주인 임재홍 사장은
한 때 내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재즈 월간지
‘두밥(Doobop)'의 발행인이기도 했으며 2000년에
LG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대한민국 재즈 올스타
콘서트]를 주최한 장본인이기도 했기에 이런
저런 인연으로 나는 개관 10주년 행사에서
사회를 맡았다. 그렇게 모두가 한바탕 잔치를
치르던 그 날 임재필 전무가 암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 않았던 그는 1차 수술을
마친지 불과 열흘밖에 지나지 않은 몸 상태로
출근하여 언제나처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왜
그랬는지 그날 임재홍 사장의 어두운 표정도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임재필 전무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늦깎이 트럼페터를 배려해주던
동료 뮤지션들에게도, 그리고 사제들에게도...
끔찍한 항암치료가 이어지면서 아픈게 얼마나
죄스러운 건지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고 한다.
감당키
어려운 시련 앞에서는 한낱 초라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오직 주님께 의지해야하는
시간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계속 되었다. 혼자서는 일어서기조차
힘든 몸 상태로 '성모의 밤' ’순교자의 밤‘
등 성당행사에 나가 트럼펫을 불었고 성당의
간판을 손으로 조각하며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정성의 기회를 바쳤다. “연주라기보다는 기도였고
간판을 완성할 때까지는 살려 두시지 않을까”생각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고통의 시간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제안
2011년
5월, 나는 오랜만에 [원스 인 어 블루문]의
2층 난간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일요일 밤의
라이브 밴드는 변함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2부 스테이지가 시작되고 첫 곡의
연주가 끝나자 트럼펫 주자 임재필이 무대에
올랐다. 첫 곡은 'I Remember Clifford'. 작곡가이자
테너 맨인 베니 골슨(Benny Golson)이 모던재즈의
명장이었던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에 헌정한 명곡이다. 재즈의 무드 감을
만끽하기에 더 없이 좋은 레퍼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연주곡은 'All The Way'.
역시 천재 트럼페터 리 모건(Lee Morgan)의
애연 곡으로 유명해진 스탠더드 넘버다. 처연하고
감성적인 테마지만 트럼펫의 호흡과 감정처리가
결코 쉽지 않은 곡이다.
임재필
전무가 힘든 병마를 이겨내고 예전의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은 사실로 보였다. 만약 처음부터
보지 않고 들었다면 임재필의 소리라고 쉽게
판단하지 못할 만큼 웬일인지 그의 연주는
더없이 힘차고 세련되어졌다. 아직 섣부른
판단을 내릴 단계는 아니겠지만 환하게 웃는
듯한 트럼펫의 음색은 기적의 시간을 느껴보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그에게
다시 기회를 허락한 존재가 음악일까 신앙일까...’
그날따라 퀸텟의 공연을 구경하는 일이 새삼스레
흥미로워졌다. 양준호의 꿈결같은 피아노 배킹(Backing),
특유의 서브 톤으로 완벽한 재즈의 질감을
빚어내는 신동진 선생의 테너, 화려한 테크닉의
유영수 선생(드럼)이 빚어내는 소리들은 개별적인
플롯을 따라가는 재미를 강조하는 듯 하면서도
동시에 촘촘하게 잘 짜여진 재즈 앙상블의
백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때로 특별한 리듬의
반전 없이 일정한 템포만을 유지하는 밋밋함
속에서는 혹시 내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주고받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나는 임재필 전무에게 앨범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네...”
오랜만에
보는 너스레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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