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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ll Evans The Bill Evans Story

 

 

 

 

 

 

The Bill Evans Story

재즈 피아노의 거장 빌 에반스의 생애을 다룬 국내 최초의 평전

<빌에반스 - 재즈의 초상>의 내용을 수록한 진정한 베스트 앨범!!!

재즈 평론가 황덕호의 엄선된 선곡과 연도별로 감수된 상세한 해설이 수록.

 

국내 최초의 96KHz/24bit 디지틀 리마스터링

  

<2CD>

CD 1 : Riverside Years

CD 2 : Fantasy Years

 

 

 

 

 

- CD 1: Riverside Years

 

Prologue

01. Waltz for Debby (Evans) / 1:21

from ‘New Jazz Conceptions’, Recorded on Sept. 27, 1956

Part. Ⅰ

02. Five (Evans) / 4:03

Teddy Kotick (b), Paul Motian (d)

from ‘New Jazz Conceptions’, Recorded on Sept. 27, 1956

03. Peri's Scope (Evans) / 3:16

Scott LaFaro (b), Paul Motian (d)

from ‘Portrait in Jazz’ / Recorded on Dec. 28, 1959

04. Nardis (M. Davis) / 5:52

Scott LaFaro (b), Paul Motian (d)

from ‘Explorations’, Recorded on Feb. 2, 1961

05. Gloria's Step (S. LaFaro) / 6:12

Scott LaFaro (b), Paul Motian (d)

from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Recorded on June 25, 1961

Part. Ⅱ

06. Peace Piece (Evans) / 6:43

from ‘Everybody Digs Bill Evans’, Recorded on Dec. 15, 1958

07. Know What I Mean? (Evans) / 4:55

Cannonball Adderley (as), Percy Heath (b), Connie Kay (d)

from Cannonball Adderley's ‘Know What I Mean?’, Recorded on March 13, 1961

08. Interplay (Evans) / 8:16

Freddie Hubbard (tp), Jim Hall (g), Percy Heath (b), Philly Joe Jones (d)

from ‘Interplay’, Recorded on July 17, 1962

09. Time Remembered (Evans) / 6:03

Zoot Sims (ts), Jim Hall (g), Ron Carter (b), Philly Joe Jones (d)

from ‘Loose Bloose’, Recorded on Aug. 21, 1962

10.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F. Coots) / 4:34

from ‘The Solo Sessions Vol. 2’, Recorded on Jan. 10, 1963

Part. Ⅲ

11. How My Heart Sings (E. Zindars) / 5:00

12. 34 Skidoo (Evans) / 6:22

Chuck Israels (b), Paul Motian (d)

from ‘How My Heart Sings’, Recorded on May 17, 29, 1962

13. Very Early (Evans) / 5:07

14. Re: Person I Knew (Evans) / 5:46

Chuck Israels (b), Paul Motian (d)

from ‘Moonbeams’, Recorded on May 29, 1962

 

- CD 2 : Fantasy Years

Part Ⅳ

01. TTTT (Twelve Tone Tune Two) (Evans) / 6:40

Eddie Gomez (b), Marty Morell (d)

from ‘Tokyo Concert’, Recorded on Jan. 20, 1973

02. Since We Met (Evans) / 6:56

Eddie Gomez (b), Marty Morell (d)

from ‘Since We Met’, Recorded on Jan. 11-12, 1974

03. One for Helen (Evans) / 6:29

Eddie Gomez (b), Marty Morell (d)

from ‘Blue in Green’, Recorded on Aug., 1974

Part Ⅴ

04. The Peacock (J. Rowles) / 7:33

Stan Getz (ts)

from Bill Evans & Stan Getz's ‘But Beautiful’, Recorded on Aug. 9, 1974

05. Hi Lili Hi Lo (B. Kaper) / 7:20

Eddie Gomez (b)

from Bill Evans & Eddie Gomez's ‘Intuition’, Recorded on Nov. 7-10, 1974

06. Elsa (E. Zindars) / 7:48

Eddie Gomez (b)

from Bill Evans & Eddie Gomez's ‘Montreux 3’, Recorded on Jul. 20, 1975

07. When in Rome (Coleman-Leigh) / 5:56

Tony Bennett (v)

from ‘The Tony Benett/ Bill Evans Album’,  Recorded on June 10-13, 1975

08. Bass Face (K. Burrell) / 10:11

Harold Land (ts), Kenny Burrell (g), Ray Brown (b), Philly Joe Jones (d)

from ‘Quintessence’, Recorded on May 27-30, 1976

09. Night & Day (C. Porter) / 6:08

Lee Konitz (as), Warne Marsh (ts), Eddie Gomez (b), Eliot Zigmund (d)

from ‘Crosscurrents’, Recorded on Feb. 28, Mar. 1-2, 1977

Part Ⅵ

10. Turn Out the Stars (Evans) / 5:07

Eddie Gomez (b), Eliot Zigmund (d)

from ‘The Paris Concert’, Recorded on Nov. 5, 1976

11. I Will Say Goodbye (M. Legrand) / 3:29

Eddie Gomez (b), Eliot Zigmund (d)

from ‘I Will Say Goodbye’, Recorded on May 11-13, 1977

Piano Played by Bill Evans

Original Producer: Orrin Keepnews (CD 1) & Helen Keane (CD 2)

 

 

 

 

 

   모두가 인정하듯이 빌 에반스(1929-1980)는 오늘날 재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허비 핸콕은 빌 에반스를 들으며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했으며 키스 자렛은 에반스의 유산을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연주자다. 현재 재즈 피아노의 흐름은 ‘버드 파웰 이후’에서 ‘빌 에반스 이후’로 그 방향이 바뀐 지 오래며 그가 이끌어 온 트리오(들)는 60년대의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과 존 콜트레인 쿼텟과 더불어 오늘날 재즈 앙상블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러므로 칙 코리아가 에반스를 가리켜 “금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언급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에반스가 그의 생전에 마일즈나 콜트레인과 같은 재즈계의 리더로 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아이러니다. 그가 <다운비트> 투표에서 피아노 부문 정상을 처음 차지한 것은 그의 첫 번째 트리오(스콧 라파로-폴 모티안)가 해산한 후인 62년(비평가 투표)과 64년(독자투표)에 비로소 가능했고 곧이어 60년대 후반이 되자 재즈 피아노의 주도권은 에반스로부터 영향 받은 핸콕, 코리아, 자렛(당시 이들 뒤에는 마일즈의 후광이 있었다)과 콜트레인 쿼텟 출신의 맥코이 타이너로 빠르게 옮겨갔다. 다시 말해 그는 급격한 재즈의 변모에 주목하며 열광했던 재즈 평론가들이나 열혈 재즈팬들(간혹 그들은 빌 에반스를 너무 낭만적이라고 비판했다) 보다는 보편적인 음악적 감성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으며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뮤지션들의 뮤지션’이었고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은밀하고 조용한 개인주의자였다.

하지만 그가 재즈계에 등장한지 약 50년 동안의 긴 시간은 우리에게 에반스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안목을 주었다. 그는 현존하는 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들 대부분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심지어 피아니스트 피터 페팅거가 지적했듯이 70년대에 등장한 ECM 레코드의 미학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의 밑그림이 되었다. 빌 에반스로 인해 재즈는 시성(詩性)을 지니게 되었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다.

이 음반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빌 에반스가 리버사이드와 판타지(또는 산하 레이블인 마일스톤) 레코드에 남긴 녹음들에서 발췌한 것이며 피터 페팅거가 쓴 그의 충실한 전기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Bill Evans: How My Heart Sings](을유문화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음반의 프롤로그로 쓰인 ‘Waltz for Debby'는 빌 에반스의 많은 작품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 에반스가 본격적인 직업 연주자로서의 활동이 있기 전, 그러니까 군복무를 마치고 그의 형 헤리의 집에서 휴식과 함께 다시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했던 1954년경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에반스의 비범함에 관한 놀라운 증언이다. 이 곡은 당시 세 살 된 그의 조카 데비를 위해 쓰여졌으며 에반스는 데비를 데리고 종종 집 근처에 있는 해변에서 산책을 하며 이 곡의 악상을 얻었다. 아이의 맑고 순진한 모습이 담긴 듯한 이 곡은 특히 왈츠리듬을 사랑했던 에반스의 성향을 근원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평생 그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어린아이와 단란한 가정에 대한 동경을 일찍이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이 동경은 불행히도 그의 생애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여기 실린 ‘Waltz for Debby'는 56년에 있었던 그의 데뷔음반에 수록된 것으로 매우 간결하고 아름다운 독주 녹음이다.

에반스는 조지 러셀, 토니 스콧의 녹음에서 사이드맨으로서 이미 탁월한 연주를 들려줬지만 정작 자신을 리더로 하는 3중주에는 자신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일찍이 그와 함께 3중주를 연주했던 기타리스트 먼델 로우는 로우-파이로 녹음된 그들의 연주 테이프를 신생 재즈 레이블 리버사이드의 오린 킵뉴스와 빌 그라우어에게 들려주었고 전화를 통해 들은 그 열악한 음질의 연주에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빌 에반스와 리버사이드 레코드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 음반의 Ⅰ부는 에반스의 초기 3중주 녹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토니 스콧 밴드에서 연주했던 테디 코틱, 폴 모티안과 함께 56년에 녹음된 에반스의 첫 리더 음반 [New Jazz Conceptions]에는 빌 에반스 트리오가 한동안 그들의 테마곡으로 사용했던 ‘Five'가 담겨있다. 보통의 네 박자이지만 첫 16마디가 다섯 잇단음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피아니스트 워렌 번하트가 “연주하기 더러운 곡”이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에반스의 짓궂은 위트가 담겨 있다. 그것은 델로니오스 몽크의 그것과 견줄 만 하다.

하지만 잘 알려졌다 시피 빌 에반스 트리오의 정수는 3년 뒤에 녹음된 [Portrait in Jazz]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56년부터 59년 사이에 빌 에반스는 매우 풍부한 음악적 경험을 누렸는데 예를 들어 토니 스콧, 찰스 밍거스, 에디 코스타, 아트 파머, 캐논볼 애덜리, 조지 러셀, 쳇 베이커의 사이드맨으로 녹음에 참여했고 특히 마일즈 데이비스 섹스텟의 일원으로 활동한 것은 에반스에게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58년 자신의 두 번째 음반 [Everybody Digs Bill Evans]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반스 트리오 미학의 완성에는 두 명의 사이드맨, 스콧 라파로와 폴 모티안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이들의 연주를 통해 재즈 피아노 트리오는 세 명의 연주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균형을 이루며 상호작용 하는 독자적인 앙상블 방식을 구축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분명히 이들 트리오 ‘이후의’ 현상이었다. 동시에 59년 트리오를 빌 에반스 ‘최초의’ 트리오라 부르는 것은 안정된 팀웍으로 짜여진 에반스 최초의 밴드라는 의미를 너머 바로 이러한 미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에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나의 트리오가 한 친구의 솔로가 끝나면 다른 한 친구의 솔로가 이어지는 방식보다는 동시적인 즉흥연주의 방향으로 움직이길 기대한다. 예를 들어 베이스 주자라면 그가 하고 싶은 대답이 있을 텐데 왜 그는 4/4박자의 리듬만을 지속해야 한단 말인가? 나와 함께 연주할 사람들은 일상적인 보통의 연주가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익힌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린 현재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59년 12월 녹음에 남긴 여러 곡들 가운데서 ‘Peri's Scope'는 에반스의 기질이 잘 나타나 있는 곡이다. 세련된 보이싱과 경쾌한 리듬 그리고 유연하게 이어지는 레가토 악절은 그의 피아니즘을 집약적으로 들려주며 그 가운데서도 베이스와 드럼의 반주는 매우 능동적이다. 원래 ’Kid's Tune'이란 제목을 갖고 있던 이 곡은 당시 에반스의 여자친구였던 페리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최초’ 트리오의 두 번째 음반(에반스에게는 통산 네 번째 음반) [Explorations]에는 에반스가 평생에 걸쳐 연주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작품 ‘Nardis'가 담겨 있다. 이 곡은 마일즈가 캐논볼 애덜리를 위해 쓴 곡으로, 마일즈 자신은 녹음을 남기지 못했고 58년 애덜리의 음반 [Portrait of Cannonball](리버사이드)에서 처음 녹음되었다. 이 녹음에서 에반스는 피아니스트로 참여했는데 이 곡에 대해 에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마일즈는) 이 곡을 갖고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달랐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멤버들이 이 곡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마일즈 역시 기쁘지 않았다. 그 날 연주가 끝난 후 그는 자기가 바라는 바대로 이 곡을 연주한 것은 나 밖에 없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난 여러 해 동안 그의 권위에 도움을 줬던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난 이 곡을 계속 연주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결성했던 모든 3중주단과 함께 이 곡은 계속 진화해 갔다.”

61년 음반 [Explorations]에 담긴 ‘Nardis'는 이 곡에 대한 에반스 트리오 최초의 녹음이지만 이미 이 연주는 58년 캐논볼 애덜리의 녹음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만한 진화를 이루고 있다. 리듬은 훨씬 가변적이며 유연해 졌고 중반부 라파로의 솔로가 흐를 때 은밀하게 소통하는 세 사람의 교감은 이들 트리오 연주의 이정표라 할만하다.

그해 6월 최초의 에반스 트리오는, 불행하게도 너무나 짧은 시간 동안만 타오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된다. 그 장소는 뉴욕 그린위치 빌리지에 있는 클럽 빌리지 뱅가드였으며 그 곳에서의 녹음을 특별히 좋아했던 제작자 오린 킵뉴스는 6월 25일 일요일 뱅가드에서 가졌던 에반스 트리오의 다섯 차례의 무대를 녹음하기 위해 녹음 장비를 지하 클럽으로 운반했다. 열렬한 10대 재즈팬이었으며 주말이면 그곳 클럽가에서 살다시피 했던 피터 틸텔만이란 인물은 당시 에반스 트리오의 연주를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라파로, 모티안 그리고 에반스는 모두 각자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성을 갖고 연주했다. 각각의 연주자는 늘 자신의 깊은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였지만 음악을 전체적으로 듣고 있었으며 마치 고도의 유기체처럼 나머지 두 명과의 상호작용을 계속해 갔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존재방식이자 기능 하는 방식이며 그것은 그들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얽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건반 위로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었지만 그의 손가락은 늘 반듯하게 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오후의 연주는 너무도 훌륭했다. 그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 몇 개 있었고 보통 때 연주보다 조금씩 더 길게 연주했다. 이날 에반스 트리오는 보다 확장된 느낌이었다. 청중들은 매우 다양했다. 젊은이, 노인, 흑인, 백인. 그들의 귀는 에반스와 그의 그룹이 만들어 내는 음악을 완벽하게 흡수하고 있었다.”

티텔만이 “전에 들어 본 적이 없는 곡 몇 개”라고 말한 것에는 스콧 라파로가 쓴 ‘Gloria's Step'이 포함되어 있었다. 독특한 뉘앙스의 주제 선율은 라파로의 재능을 말해주며 한층 더 완벽해진 이들 3인의 즉흥연주는 가히 재즈 앙상블의 신기원이라 불러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트리오의 한 축을 이루던 라파로는 뱅가드에서의 연주 열흘 뒤 뉴욕 주 북부에 있는 그의 고향 제네바로 차를 몰고 가다가 외진 장소에서 나무와 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피터 페팅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삼두체제의 종말이었다. 결국 이렇게 막을 내린 ‘최초의’ 트리오에 대해 에반스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 객관적인 결과물은 신뢰의 방식을 통해 만들어졌다. 자연히, 주모자로써 난 연주의 틀을 만들었지만 결코 감독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 그 자체로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면 난 무엇도 원하지 않았다. 스콧과 폴을 만났다는 것은 아마도 내 경력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요소일 것이다. 난 그날 우리가 녹음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날이 내가 스콧을 본 마지막 날이었으며 우리의 마지막 연주였기 때문이다. 당신이 연주의 컨셉트를 뛰어난 주자들의 특별한 품성에 의존하여 발전시켜 왔다면, 만약 그들이 떠난 뒤에는 이를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겠는가?”

실재로 에반스는 이후 1년 간 거의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은 채 깊은 침체 속에 지내야만 했다.

 

 리버사이드에서 남긴 다양한 편성의 녹음들로 이뤄진 이 음반의 Ⅱ부는 그 시작을 위해 5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에반스는 샘 존스, 필리 조 존스와 함께 연주한 3중주 음반 [Everybody Digs Bill Evans]를 녹음했는데 그 중에서 에반스가 피아노 독주로 녹음한 ‘Peace Piece'는 에반스의 또 다른 지향점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두 개의 단순한 코드가 반복되면서 그 위로 펼쳐지는 즉흥연주는 피터 페팅거가 지적하듯 쇼팽의 자장가 Op. 57에서 엿보이는 것이며 같은 세션에서 녹음했던- 그러므로 에반스가 명백히 인식했던 - 번스타인의 ’Some Other Time'과도 가까이 닿아있다. 페팅거는 이 곡의 즉흥선율을 메시앙의 ‘새의 카탈로그’와도 관련짓고 있는데 아무튼 명백한 것은 에반스의 이러한 방식이 그에게 곧 있을 마일즈 데이비스 섹스텟에서의 녹음 [Kind of Blue](콜럼비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마치 최면술과도 같은 이 곡의 신비스러움은 동시대 일반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와 그를 가장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에반스의 독특한 음악성은 심지어 그가 사이드맨으로 참여한 음반에서도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61년 1월부터 3월까지 진행된 음반 [Know What I Mean?](리버사이드)에서 리더인 캐논볼은 에반스의 도움으로 보통 때의 소울풍에서 벗어난 아주 특별한 녹음을 완성했으며 특히 타이틀곡에서- 피터 페팅거의 지적에 따르면 - 그는 마일즈 섹스텟에서 연주했던 ‘Flamenco Sketches'와 같은 다섯 개의 층위로 이뤄진 묘한 색감을 연출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앨범을 위해 에반스가 스튜디오에서 즉석으로 만든 곡이었다.

음반제작에 극도로 엄격했던 에반스는 62년부터 다작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오린 킵뉴스가 지적했듯이 약물중독에 의한 경제적 궁핍 때문이었고 이러한 상황은 라파로의 죽음 이후 가졌던 긴 공백기에 심화되었다. 62년 4월부터 8월까지 그는 여덟 종류의 음반을 녹음했으며 이러한 양적 팽창은 자연히 에반스로 하여금 다양한 편성의 녹음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에반스의 예술성은 그러한 다작에도 불구하고 작품 하나하나를 범작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냈다.

62년 7월에 녹음된 음반 [Interplay]는 에반스가 리더로 참여한 최초의 3중주 이상의 편성(5중주)을 갖춘 녹음으로, 여기에는 3중주 때와는 또 다른 에반스의 미감이 담겨있다. 비록 앙상블 방식은 그의 3중주보다는 보수적이지만 각각 악기의 색채를 살려내는 그의 미감은 분명 탁월한 것이다. 아트 파머를 대신 해 출연한 프레디 허바드의 뮤트 사운드가 매력적이며 여기에 이미 [Undercurrent](유나이티드 아티스츠)에서 완벽한 앙상블을 이룬 바 있는 기타리스트 짐 홀의 사운드를 더한 것은 확실히 에반스다운 심미안이다. 이들 뒤로 역시 에반스와 호흡을 맞춰 왔던 퍼시 히스와 필리 조 존스(그는 에반스가 평생에 걸쳐 가장 좋아했던 드러머 중 하나다)가 탄력 있는 리듬을 만들어줌으로써 이 음반의 타이틀 곡(부제는 ‘블루스 -F단조’)은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Interplay]가 녹음된 지 바로 한 달 뒤 에반스는 또 다른 5중주 녹음을 오린 킵뉴스에게 제의했다. 당시 에반스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곡을 작곡해 그것들을 음반으로 남기려 했는데(출판사는 그의 작품들 중 음반으로 녹음된 것만을 출판해 주었다) 음반 [Loose Bloose]에는 에반스의 그러한 의도가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그가 작곡한 작품들 가운데는 주옥같은 명곡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Time Remembered'는 에반스가 평생을 두고 즐겨 연주했던 걸작 중 하나다. 그는 이 곡을 이미 3중주로 연주해 왔지만 이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테너 색소폰이 포함된 편성이 가장 어울린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기대에 주트 심즈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부응했다. 이 곡을 통해 우린 그가 이전에 만들었던- 하지만 그 저작권을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빼앗긴 - ’Blue in Green'의 밀경(密境)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며 연주 말미의 아스라한 앙상블은 그의 3중주의 방식을 보다 폭넓게 적용해 보려는 에반스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62년 말 에반스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진 리즈(그는 작사가이자 에반스의 절친한 친구였다)의 연인이자 여성으로서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서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둔 헬렌 킨이 에반스의 사업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결과로 에반스는 63년 초로 만료되는 리버사이드와의 계약을 끝내고(당시 리버사이드는 이미 파산지경에 놓였다) 버브 레코드와 새 계약을 맺었으며, 63년 1월 오린 킵뉴스와의 마지막 녹음에 들어갔다. 자연히 당시 킵뉴스의 마음은 매우 찹찹한 것이었다.

“빌과의 결별은 완전히 쌍방에 의한 것이었다. 그와 그의 매니저는 여전히 내 친구들이었다. 일에 몰두하는 빌의 모습을 조정실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비참함이란 정말이지 지독히도 합당한 것이었다.”

그날 피아노 독주로 진행된 마지막 녹음은 음반 [The Solo Sessions]에서도 나타나듯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에반스가 뜻 밖에 선택한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은 유독 그날의 녹음 가운데 눈에 띄는 곡으로, 친숙한 소품 속에 에반스의 잘 훈련된 정갈한 터치가 드러난다. 특히 곡의 주제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다채로운 변주를 펼쳐내는 솜씨는 즉흥연주에 관한 전체적인 조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곡 역시 에반스가 이후에도 즐겨 연주한 레퍼토리다.

 

이 음반의 Ⅲ부는 ‘최초’의 트리오 해산 후 1년만에 재 결성된 빌 에반스 트리오의 연주로 이뤄져 있다. 1년간의 공백 동안에 에반스가 깊고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증언에 의하면 에반스는 세상을 떠난 라파로의 옷을 입고 거리를 배회했다고 한다) 이후 그에게서 풍성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은- 아무리 그것이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서라 할지라도 - 위대한 예술가들에게서 간혹 볼 수 있는 지독한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미 57년 에반스가 브랜다이즈 대학 음악회에서 만난 적이 있는 영민한 베이스 주자 척 이스라엘즈를 영입함으로써 에반스는 다시 자신의 트리오를 결성했고 분명히 그의 트리오는 한층 무르익은 연주를 들려줬다.

 

Ⅲ부를 이루고 있는 네 개의 곡이 모두 에반스의 핵심 레퍼토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다는 점은 이 곡들을 담은 두 음반 [How My Heart Sings]와 [Moonbeams]의 뛰어남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특히 전자의 타이틀곡은 에반스가 군복무 시절부터 교분을 가진 작곡가 얼 진다스의 작품으로, 이 곡은 두 사람의 음악적 감수성이 얼마나 섬세하게 공유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빌은 항상 자신이 3/4박자의 사람이라고 말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동의했다”라는 진다스의 말처럼 이 곡은 또 다른 ‘Waltz for Debby'처럼 사랑스러우며, 여기에 담긴 연주의 절제미를 페팅거는 이 새로운 트리오의 원형질적인 연주며 그것은 이스라엘즈의 영입이 가져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곡과 연주상의 방식은 에반스의 또 다른 작품 ’34 Skidoo'에 그대로 이어진다.

Very Early'는 에반스가 사우스이스턴 루이지애나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이미 작곡했던 곡으로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에반스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쓰여진 곡이며 제목처럼 ‘일찍이’ 그가 왈츠 스타일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 트리오의 섬세하고도 우아한 연주는 이 작품에 완숙미를 불어넣음으로써 마치 62년 당시에 작곡된 듯한 느낌을 준다.

Re: Person I Knew'는 CD 1의 끝을 장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에반스가 클럽 공연의 서두에 즐겨 연주하던 곡이다. 이 곡 역시 이들 트리오가 그 어떤 새로운 작품에도 완숙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으며 특히 에반스의 피아노에 대해 페팅거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하나의 악절 속에 담긴 음색의 폭은 최고의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그것과도 견줄만하며 내부적으로 순환하는 듯한 코드구조를 지닌 작곡기법은 페달 베이스와 대응하면서 시퀀스를 변화시킴으로써 화성상의 긴장감을 다양하게 빚어낸다.”

다소 기이한 이 곡의 제목은 에반스와 진정으로 우정을 나눴던 제작자 오린 킵뉴스(Orrin Keepnews)의 이름 철자를 재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10년이란 세월은 누구에게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63년부터 73년까지의 에반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미 62년부터 버브 레코드와 장기계약을 맺고 녹음을 시작했으며 67년부터는 매니저인 헬렌 킨이 직접 음반 제작을 맡게 되었다. 그의 트리오는 시기에 따라 다소간의 변동이 있었지만 66년부터 그와 함께 한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의 역할은 그 누구보다도 지속적이며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63년 작 [Conversations with Myself]와 68년 작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 [Alone](이상 버브), 71년 작 [The Bill Evans Album](콜럼비아)를 통해 그래미를 손에 쥠으로써 명실 공히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라섰다.

73년 헬렌 킨은 에반스와 판타지 레코드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그 첫 녹음을 에반스 최초의 일본 투어를 통해 완성했다. 그리고 이 실황녹음은 이제 국제적으로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의 명성을 얻은 에반스 본인의 위상을 스스로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는 일본, 그 어느 곳에서든 위대한 예술가로 환영받았으며 10회에 걸친 그의 일본 공연은 전회가 매진되었다.

그러므로 진지한 일본 팬들 앞에서 그는 아마도 자신의 실험성을 담은 ‘TTTT'와 같은 작품을 연주하고 싶었을 것이며 그 반응은 역시 성공적이었다. 이전에 작곡했던 ’Twelve Tone Tune' 보다 한결 더 완벽한 12음 기법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신축적인 리듬과 난기교의 즉흥연주를 통해 ‘비르투오조’ 에디 고메즈 마저도 시험대에 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74년 1월 에반스는 자신의 음악적 고향 빌리지 뱅가드에서 또 한번의 녹음을 남겼다. 1980년 뱅가드의 주인 맥스 고든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25년 전 뱅가드에서 빌 에반스가 처음 연주했을 때 그는 모던재즈 쿼텟 무대 사이에 등장하는 막간 피아니스트였다. MJQ가 무대에 오르면 관중들은 음악을 듣느라 조용해졌다. 이어서 빌이 그 무대에 오르면 웅성거리는 소리가 실내를 떠돌기 시작했다. 빌 에반스가 도대체 누구야? 그들은 그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유명 연주자의 무대 사이를 채워줬을 뿐이었다. 오늘날 빌은 유명 연주자다. 그는 일 년 동안 뱅가드에서 네 다섯 번을 연주한다. 그가 연주할 때면 뱅가드는 마치 타운 홀이 된 듯 하다.”

이미 최고의 재즈밴드가 된 에반스 트리오의 팀웍은 에디 고메즈와 더불어 68년부터 함께 해온 드러머 마티 모렐을 통해 절정의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었다. 특히 새로운 왈츠넘버 ‘Since We Met'는 음반의 타이틀곡이 될 만큼 에반스의 정수를 담은 작품으로 이 곡은 5개월 전 결혼한 그의 부인 네넷 에반스를 위해 쓴 곡이다. 그리고 네넷은 곡의 제목을 직접 지었다.

그 해 8월 에반스는 캐나다 방송사(CBC)에서 제작하는 여름철 시리즈물에 출연하기 위해 캐나다로 향했다. 당시 고메즈-모렐로 짜여진 이들 트리오는 6년간의 팀웍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에반스 트리오 역사상 가장 오래 유지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들의 연주는 절정에 올라 있었으며 어떤 매너리즘도 용납하지 않았다. 에반스가 고백한 대로 에디 고메즈는 음악이 지루하게 흐르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으며 여기 담긴 ‘One for Helen'에서 모렐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매니저 헬렌 킨을 위해 쓴 곡으로, 킨은 에반스를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진심으로 존경하며 배려한 인물이었다. 에반스 트리오의 마지막 드러머 조 라바베라는 에반스에게 있어서 킨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빌은 그녀를 최대한 신뢰했기 때문에 음악을 녹음하면 테이프를 헬렌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헬렌 이거 들어봐. 그리고 편집 좀 해주고 믹싱도 좀 해줘. 그리고 완성되면 내게 들려줘.’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빌의 음악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진실이다. 만약 헬렌이 아니었다면 그는 벌써 오래 전에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진 리즈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만약 62년 에반스가 킨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아마도 6개월 이상을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앞선 Ⅳ부가 6년간 지속된 에반스 트리오에 관한 기록이라면 Ⅴ부는 판타지(또는 마일즈스톤)에서 녹음된 에반스의 다양한 편성의 녹음들로 이루어져 있다.

CBC와의 작업 직전에 에반스 트리오는 테너 색소폰 주자 스탄 겟츠와 함께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열린 재즈 콘서트에 출연했다. 이날의 연주에서 스탄 겟츠가 예정에 없던 ‘Stan’s Blues'를 연주한 것은 에반스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두 사람이 2중주로 연주한 ‘The Peacock'만은 그들의 각기 다른 디스코그라피를 살펴 볼 때 지극히도 절묘하게 이뤄진 명연주였다. 그것은 64년 버브에서의 녹음보다 한층 서로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 만족스런 연주 끝에 스탄 겟츠는 빌 에게 44번째 생일(8월 16일)을 공개적으로 축하했으며 에반스는 피아니스트 지미 롤즈의 이 작품을 이후에도 즐겨 연주했다.

74년 11월 에반스는 에디 고메즈와 2중주로 녹음하고 싶다는 오랜 계획을 드디어 실행으로 옮겼다. 그들의 음반 [Intuition]에는 재즈 레퍼토리로는 그리 잘 연주되지 않는 ‘Hi Lili Hi Lo'가 실려 있는데 이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연주는 에반스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연인 엘레인에게 바쳐진 곡이다.

엘레인은 빌과 정식으로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62년부터 73년까지 동거동락했고 두 사람은 사실상의 부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빌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연주여행 속에 마흔의 나이를 넘기자 자녀를 갖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품게 되었고 불행히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엘레인은 그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다. 결국 빌은 73년에 만난 네넷과 결혼했으며 엘레인은 곧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충격으로 빌은 그의 형 해리의 집에서 몇 주간 칩거하면서 모든 활동을 중단했으며 그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평생을 따라다녔다.

75년 7월 에반스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에디 고메즈와 2중주로 녹음을 남겼으며 그것은 이 페스티벌에서 녹음한 그의 세 번째 음반이었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에반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얼 진다스의 작품 중 하나인 ‘Elsa'를 연주했다. 페팅거가 지적했듯이 이 곡 역시 에반스와 진다스가 얼마나 서로의 미감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보여 주는데 그 점에 대해 진다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나와 음악에 대해 토론했으며 계속 작곡하도록 독려했다. 내게 있어서는 그 점이 그의 천재성과 병행된 최고의 미덕이었다. 투명하고 아무런 허식 없이 그는 누군가의 음악에 대해 완전히 몰두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음악적으로, 정신적으로 그의 우정을 나눠주었다. 난 그것을 결코 잃거나 잊지 않을 것이다.”

이날 연주에서 고메즈는 그만의 독특한 운궁을 솔로를 통해 들려준다.

75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 약 한달 전 에반스는 보컬리스트 토니 베넷과 한 장의 음반을 녹음했다. 역시 재즈 가수인 애니 로스는 이전부터 두 사람이 함께 녹음하라고 권하고 있었으며 에반스는 자신의 작품을 토니 베넷이 부른다면 아마도 멋질 거라는 이야기를 주위에서부터 듣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이 실재로 녹음되었을 때 그것은 말할 나위 없는 걸작이었다. 베넷은 당시의 작업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빌은 우리가 녹음한 모든 곡을 곡마다 서너 시간씩 작업했다. 우리가 어떤 곡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곡의 키와 템포를 정하게 되면 그는 이 곡을 마무리하기 위해 홀로 남겨졌다. 그는 헬렌 킨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테이프가 계속 돌아가게 해줘요.’ 그가 하고 있는 것을 난 믿기 어려웠다. 계속 반복해서 그가 만들어낸 결과는 굉장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우리가 녹음할 준비가 된 것 같군요’라고 말했다. 우린 2-3일간 작업했고 스튜디오엔 엔지니어 돈 코디를 빼고는 헬렌, 나 그리고 빌 외엔 그 누구도 없었다.”

주위의 증언에 따르면 76년 에반스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는 맥신과 에반이라는 두 자녀가 있었으며, 이미 약물을 끊고 안정감을 되찾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14년만에 다시 5중주 음반을 녹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음반은 종전의 에반스 스타일과는 거리를 둔 보다 정통적인 연주였으며 그것은 어느 면에서 자신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헬렌 킨은 하드밥 주자 해롤드 랜드와 케니 버렐을 추천했고 에반스는 완전히 다른 리듬섹션을 만들기 위해 레이 브라운과 필리 조 존스에게 연주를 의뢰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에반스는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와 같은 스윙감 넘치는 연주를 지향했는데 그 점에 대해 페팅거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빌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왜 나의 리듬섹션이라고 저런 사운드를 낼 수 없는가?’ 이 음반을 놓고 보건대, 그는 보다 직설적인 스윙을 연주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오로지 촘촘하게 짜여진 자신의 실내악적인 그룹을 통해서 그는 더딘 발전을 이룩해 냈고 그것은 그의 예술의 중심 줄기였다.”

이듬해에도 에반스는 또 한번의 5중주 녹음에 도전했다. 여기에는 리 코니츠와 원 마쉬가 색소폰 주자로 등장했는데 그것은 에반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레니 트리스타노 전통의 부활이었고 에반스는 이미 59년 리 코니츠 퀸텟의 일원으로 그 전통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Night & Day'에서 들려주는 두 색소포니스트의 대위법과 물 흐르는 듯한 에반스의 프레이즈는 오랜만에 스튜디오에서 재회한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념을 선명히 들려준다.

 

드러머 엘리엇 지그문드는 75년에 에반스 트리오에 가입했지만 7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에반스와 함께 스튜디오에 들어설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음반의 마지막 Ⅵ부는 에반스-고메즈-지그문드로 짜여진 트리오가 남긴 두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판타지에서 남긴 에반스의 마지막(혹은 그 무렵) 녹음에 해당된다.

이들은 77년 스튜디오에 들어서기 전, 76년 파리에서 열린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했는데 당시 이들의 연주는 일본에서 [The Paris Concert]란 제목의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당시 연주 중 ‘Turn Out the Stars'는 에반스의 또 다른 대표곡으로, ’Waltz for Debby'와 마찬가지로 진 리즈의 노랫말이 더해진 곡이다. 루바토가 곁들어진 도입부는 에반스 특유의 낭만성을 듬뿍 담고 있으며 그 우수는 곡 전체에서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에반스는 66년 타운홀 콘서트에서 이 곡을 그 무렵 타계한 아버지를 위해 연주했으며 68년 TV에 출연해 역시 세상을 떠난 로버트 케네디를 위해 이 곡을 연주했다.

77년 5월 에반스 트리오는 판타지 레코드와의 마지막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섰고 그 날의 녹음 중 미쉘 르그랑의 작품 ‘I Will Say Goodbye'는 이때 녹음들 중 대표곡이 되었다. 에반스는 르그랑의 감상적인 선율을 결코 통속적이지 않게, 어떤 면에서는 매우 담담하게 연주했으며 그것은 역설적으로 깊은 우수를 담아냈다. 이러한 방식은 3개월 뒤에 녹음된 그의 또 다른 걸작 [You Must Believe in Spring](워너)으로 이어진다. [I Will Say Goodbye]는 에반스에게 또 한번의 그래미를 안겨다 주었다.

 

[I Will Say Goodbye]를 녹음했을 때 에반스의 여생은 약 3년 남짓 남아 있었다. 불행히도 에반스는 78년경부터 다시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79년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형 해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에반스는 또 다시 헤어날 수 없는 큰 슬픔에 빠졌으며 그의 육체는 더욱 더 쇠잔해져 갔다. 부인 네넷은 마지막의 에반스가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획을 짜고 있었다고 말했으며, 진 리즈는 그의 죽음을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늘 간염 때문에 고통받았으며 숨을 거둘 때는 폐출혈과 급성 기관지, 폐렴이 합병증으로 나타났다. 뉴저지 플레인필드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에서 눈을 감았으며 그의 형이 생활하던 루이지애나 배턴 루지에 현재 잠들어 있다.

(재즈평론가 황덕호)

 

 

 

 

 

 

<동시발매>

 

빌 에반스 - 재즈의 초상

피터 페팅거 지음 / 황덕호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재즈의 음유시인, 빌 에반스를 추억하며...

20세기 모던 재즈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빌 에반스. 그의 손끝이 건반 위에서 주옥같은 선율을 뽑아내는 동안, 마약과 각종 질병은 에반스의 몸과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뉴욕 타임즈>가 ‘올해 주목할 만한 책’(1998)으로 선정한 <빌 에반스 - 재즈의 초상>은 그의 눈부신 음악적 유산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인간적 고뇌와 비극적인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책은 20세기 전후로 음악, 건축, 사진 등 대중예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영혼을 쫓아가보는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첫 번째 편으로, 토스카니니, 피아졸라, 헬무트 뉴튼, 마일스 데이비스, 빌리 홀리데이, 쳇 베이커, 스탠리 큐브릭, 글랜 굴드, 프랑수아 트뤼포, 피나 바우슈, 쟈코메티, 라흐마니노프 편이 출간될 예정이다.